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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시기 한중관계의 변화과정The Transformation of Korea-China Relations in Modern Period

Other Titles
The Transformation of Korea-China Relations in Modern Period
Authors
송규진
Issue Date
2013
Publisher
호서사학회
Keywords
한중관계; 근대조약체제; 한러밀약;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 조공체제; 한청통상조약; 한성개잔; Korea-China Relations; Korean-Russian Secret Agreement; the Korea-China Regulations for Maritime and Overland Trade; Tributary System; The Treaty of Commerce between Korea and China; Trade in Seoul
Citation
역사와 담론, no.68, pp.197 - 228
Indexed
KCI
Journal Title
역사와 담론
Number
68
Start Page
197
End Page
228
URI
https://scholar.korea.ac.kr/handle/2021.sw.korea/133713
ISSN
1226-8089
Abstract
근대시기의 한중관계는 이중적 국제질서 시기, 조공체제 붕괴 이후 과도적 시기, 한중간의 근대조약체결 시기, ‘외교권 박탈’ 이후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강화도조약으로 근대조약체제에 편입된 이후에도 한국은 중국과 조공체제를 유지하여 이중적 국제질서 하에 놓이게 되었다. 1882년 9월에 체결된 조청수륙무역장정이 체결되고 종주권을 지키려는 중국의 압력이 강화되었다. 이에 고종이 러시아를 끌어들이려 했다는 한러밀약설이 한국역사학계에서 정설로 인정받고 있지만 명확한 근거가 없다. 오히려 고종은 권력유지를 위해 중국에 의존적이었고 이는 한중관계에서 조공체제가 유지하는 한 요인이 되었다. 청일전쟁 이후 일본군이 중국공관을 공략하고 중국 외교관이 철수하자 한중외교관계는 일시적으로 중단되는 과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중국은 한국 내의 중국인을 보호하기 위해 중국인과 관련한 모든 교섭안건을 영국에 위탁했다. 중국은 외교관계를 재정립하면서 조공체제로 회귀하고자 했지만 중국인 보호라는 현실적인 문제로 근대조약을 체결하기로 결정했다. 1899년 9월에 한국과 중국은 한청통상조약을 체결하였다. 한청통상조약 체결 과정에서 치외법권 문제는 어느 정도 합의를 이루었으나 한성개잔 문제를 둘러싸고 한국과 중국은 열띤 공방전을 펼쳤다. 그런데 조약체결을 우선시한 한국이 이 문제를 양보함으로써 극적으로 타결되었다. 한청통상조약 체결 이후 국경분쟁이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중국은 국경분쟁을 해결하는 데에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여 일정한 합의를 이루기도 했다. ‘을사보호조약’ 이후 한국의 외교권이 일본에 넘어가면서 중국총영사는 통감부로부터 한국 내 중국거류지에 대한 법적 지위를 부여 받는데 주력했다. 그러나 한국병합으로 근대시기의 한중관계가 종말을 고하면서 중국거류지도 철폐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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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세아문제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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