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tailed Information

Cited 0 time in webofscience Cited 0 time in scopus
Metadata Downloads

여주이씨·성호학파의 지식논쟁과 지식권력의 형성Knowledge Debates of the Yi of Yeoju and Seongho School and the Formation of Knowledge Power

Other Titles
Knowledge Debates of the Yi of Yeoju and Seongho School and the Formation of Knowledge Power
Authors
김형찬
Issue Date
2013
Publisher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Keywords
Near-Seoul Namin; the Yi of Yeoju; Seongho school; knowledge power; Seongho Yi Ik; Dasan Jeong Yakyong; Toegye Yi Hwang; 근기 남인; 여주 이씨; 성호학파; 지식권력; 성호 이익; 퇴계 이황
Citation
민족문화연구, no.60, pp.3 - 23
Indexed
KCI
Journal Title
민족문화연구
Number
60
Start Page
3
End Page
23
URI
https://scholar.korea.ac.kr/handle/2021.sw.korea/133734
ISSN
1229-7925
Abstract
이익은 유학의 정맥이 이황에게로 전해졌고 자신이 바로 그 맥을 계승하였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율곡학파의 수장인 이이를 정면 공격하였다. 이익이 초점을 맞춘 것은 한편으로는 이황의 理發說 또는 互發說을 옹호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이 율곡학파에서 지적한 理氣不相離의 원칙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것을 규명하는 것이었다. 이 논의는 그 후학들에 이르러 心性論과 결합된 理氣論의 의미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하고 性命之理와 形氣之理, 人心의 理氣와 天地의 理氣 등으로 개념을 세분화하며 진행되었다. 이를 통해 上帝-天-天命-理 등으로 이어지는 조선성리학의 근본문제에 대해 이황과 이이의 설을 비교하며 재성찰할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되었다. 이렇게 근본적으로 재검토된 조선유학은 이 무렵 전해진 서학을 접하면서 새로운 전환의 기회를 갖게 되었다. 活物로서의 理와 上帝·天에 대한 敬畏를 강조했던 이황의 문제의식은 여주이씨·성호학파에서 天主를 인격신적 성격의 上帝로 이해하는 데 용이한 기반을 제공하였다. 신후담, 윤동규, 안정복, 이병휴, 권철신 등을 거치며 이루어진 지적 논쟁의 성과는 정약용에 이르러 理의 의미를 제한적으로 축소하고 上帝를 그 철학체계의 정점에 놓으며 조선유학의 전개에 새로운 방향을 열어놓았다. 이익과 그 후학들은 정치권력의 주변에 머물렀지만, 이들의 영향력은 이러한 논쟁을 기반으로 하여 중앙정계의 권력과 다른 차원에서 지식인 사회에 확산될 수 있었다.
Files in This Item
There are no files associated with this item.
Appears in
Collections
College of Liberal Arts > Department of Philosophy > 1. Journal Articles

qrcode

Items in ScholarWorks are protected by copyright, with all rights reserved, unless otherwise indicated.

Related Researcher

Researcher Kim, Hyoung chan photo

Kim, Hyoung chan
문과대학 (철학과)
Read more

Altmetrics

Total Views & Downloads

BROW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