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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일러일전쟁의 전후처리와 한국문제日清・日露戦争の戦後処理と韓国問題

Other Titles
日清・日露戦争の戦後処理と韓国問題
Authors
조명철
Issue Date
2010
Publisher
한일관계사학회
Keywords
청일전쟁; 러일전쟁; 의화단사건; 북수남진론; 삼국간섭; 고무라 주타로무쓰 무네미쓰; 이토 히로부미; 야마가타 아리토모; 아오키 슈조; 日清戦争; 日露戦争; 義和団事件; 北守南進論; 三国干渉; 小村壽太郎; 陸奥宗光; 伊藤博文; 山県有朋; 青木周蔵
Citation
한일관계사연구, no.36, pp.263 - 289
Indexed
KCI
Journal Title
한일관계사연구
Number
36
Start Page
263
End Page
289
URI
https://scholar.korea.ac.kr/handle/2021.sw.korea/134536
ISSN
1229-3687
Abstract
본고는 청일전쟁에서 러일전쟁에 이르는 시기에 일본이 한국문제를 어떻게 처리했는가를 중점적으로 고찰했다. 청일전쟁에서 일본은 청으로부터 조선의 독립이라는 명분으로 조선에서 청의 영향력을 제거하고 일본의 지배력을 강화하고자 했다. 결과적으로 일본은 전쟁에서 승리했지만 조선에서의 영향력은 기대한 만큼 강화시키지는 못했다. 오히려 전후 한국문제는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이른바 북수남진론이 대륙정책의 중심을 차지했다. 하지만 의화단 사건을 계기로 한국문제는 또다시 일본의 가장 중요한 외교적 현안으로 부상했다. 이때는 한국문제가 단독으로 제시된 것이 아니라 만주문제와 복잡하게 얽혀서 이른바 만한교환론과 같은 형태로 나타나게 되었다. 이렇게 만주와 한국을 놓고 러시아와 일본이 갈등을 증폭시키는 형세를 보이자 영국은 일본과 손을 잡고 러시아에 대항하는 군사동맹을 맺게 된다. 영일동맹을 맺게 되는 과정에서 한국문제는 또 다시 양국간에 첨예한 논쟁거리가 되었다. 여기서도 일본은 자신들이 원하는 한국의 독점적인 지배권을 얻어내지 못하였다. 하지만 영일동맹은 러시아를 압박하는 강력한 수단으로 활용되어 러시아와 일본은 한국과 만주를 놓고 무력적 대결을 불사하는 형국을 조성하였다. 결국, 일본은 러일전쟁을 통하여 한국에 대한 완전한 지배권을 획득하게 되었고 이러한 일본의 권한은 포츠머스 조약, 제2차한일협약, 카츠라・태프트협약 등을 통해 중복적으로 확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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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lege of Liberal Arts > Department of History > 1. Journal Artic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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