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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안중근의 이토 사살 사건에 대한 국내 주요 언론의 보도와 지식인의 반응The Domestic Press Reports and Reaction about An Jung-Geun’s Ito Assassination in 1909

Other Titles
The Domestic Press Reports and Reaction about An Jung-Geun’s Ito Assassination in 1909
Authors
유바다
Issue Date
2021
Publisher
호서사학회
Keywords
An Jung-Geun; Daehan-Kyenyonsa; Daehan-Maeil-Shinbo; Huangseong-Shinmun; Ito Hirobumi; Korean Independency; Maecheon-Yarok; Oriental Peace; 대한계년사; 대한매일신보; 동양평화; 매천야록; 안중근; 이토 히로부미; 한국독립; 황성신문
Citation
역사와 담론, no.98, pp.197 - 227
Indexed
KCI
Journal Title
역사와 담론
Number
98
Start Page
197
End Page
227
URI
https://scholar.korea.ac.kr/handle/2021.sw.korea/138870
ISSN
1226-8089
Abstract
1909년 10월 26일 淸 하얼빈에서 일어난 안중근의 이토 사살 사건을 다룬 국내 언론의 보도 태도는 처음에는 소극적이었다. ≪皇城新聞≫은 오히려 안중근을 두고 行凶者라고 하는 등 일제 권력에 압도당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 이면에서는 안중근이 설파한 “동양평화”와 “한국독립”을 근거로 들어 일진회 등의 합방 또는 병합에 관한 논의를 비판하기도 하였다. 심지어 ≪大韓每日申報≫는 하얼빈의 총성을 직접 거론하면서 이완용을 박쥐로 취급하여 안중근의 의거를 본받을 것을 촉구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국내 언론의 보도는 국내 일반에도 광범위한 영향을 끼쳤다. 특히 鄭喬는 大韓季年史 를 통하여 이들 보도를 적극적으로 인용하여 안중근의 이토 사살 사건을 후세에 남기고자 하였다. 黃玹 또한 梅泉野錄 을 통하여 민간에서 이 사건을 쾌거로 받아들이고 있었음을 밝혔다. 이와 같이 안중근의 이토 사살 사건은 국내 언론의 보도를 통하여 병합 직전 한국 사회에 “한국독립”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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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lege of Liberal Arts > Department of Korean History > 1. Journal Artic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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