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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군의 민회 개설 시도와 서구 의회Donghak Peasant Army’s Assembly Plan and the Western Parliament

Other Titles
Donghak Peasant Army’s Assembly Plan and the Western Parliament
Authors
유바다
Issue Date
2022
Publisher
역사학연구소
Keywords
Donghak Peasant Army; Assembly; Parliament; Boeun Assembly; Assemblée Nationale; 동학농민군; 민회; 의회; 보은집회; 국민의회
Citation
역사연구, no.45, pp.169 - 197
Indexed
KCI
Journal Title
역사연구
Number
45
Start Page
169
End Page
197
URI
https://scholar.korea.ac.kr/handle/2021.sw.korea/146668
ISSN
1229-1714
Abstract
이 글에서는 서구 의회제도와 동학농민군 조직의 연관성을 살펴보고자 한다. 1893년 4월 동학교도들이 선무사 어윤중에게 민회를 자칭했기 때문이다. 이때 동학교도들은 “일찍이 여러 나라에도 민회가 있다”고 하였다. 조선에서 서구 의회를 민회, 민당 등으로 인식한 흔적은 1883년 『한성순보』에서 가장 먼저 발견할 수 있다. 유럽에서는 각국 정부가 예산표를 작성하여 민회에 회부한다는 기사가 있었다. 영국, 미국, 일본의 의회 제도, 혹은 민회 등이 언급되기도 하였다. 1894년 동학농민전쟁 당시에는 충청도 천안, 이인, 진천, 경상도 지례, 고성 등 다섯 고을에 민회소가 설치되었다. 특히 이인 민회소의 동학농민군은 이미 취당하여 위국안민을 말하고 있었다. 동학농민군이 언급한 민회는 1789년 프랑스혁명으로 성립된 국민의회 (Assemblée Nationale)와 비교할 수 있다. 여기서 Assemblée는 “사람들의 모임”, 즉 “집회” 그 자체를 일컫는다. 이를 비추어 보면 1893년 보은집회는 이미 그 자체로 민회, 혹은 의회(Assemblée)가 될 수 있었다. 더욱이 1896년 독립협회 결성 이후 한국에서 서구 의회는 곧 민회로 지칭된 점에서 동학교도들의 민회 자칭의 역사성을 가늠할 수 있다. 따라서 동학농민군의 민회 개설 시도는 우리나라 최초의 의회 개설 운동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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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lege of Liberal Arts > Department of Korean History > 1. Journal Artic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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