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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중반 영국의 대조선 문호개방정책 기원 — 영⋅러 대결과 조⋅청 속방관계와 관련하여The Beginning of Britain’s Diplomatic Policies to Open Korea in the 19mid Century: With Regard to the Anglo-Russian Confrontation and the Korea-Qing Tributary Relationship

Other Titles
The Beginning of Britain’s Diplomatic Policies to Open Korea in the 19mid Century: With Regard to the Anglo-Russian Confrontation and the Korea-Qing Tributary Relationship
Authors
한승훈
Issue Date
2017
Publisher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Keywords
보어링; 웨이드; 올콕; 크림전쟁; 캄차카; 조선의 문호개방; 영러 대립; 그레이트 게임; 조청 속방 관계; John Bowring; Thomas Wade; Rutherford Alcock; Crimean War; Kamchatka; Korea’s Open-Door; Anglo-Russian Confrontation; Great Game; Korea-Qing Tributary Relation
Citation
인문논총, v.74, no.2, pp.9 - 41
Indexed
KCI
Journal Title
인문논총
Volume
74
Number
2
Start Page
9
End Page
41
URI
https://scholar.korea.ac.kr/handle/2021.sw.korea/85633
DOI
10.17326/jhsnu.74.2.201705.9
ISSN
1598-3021
Abstract
본 논문은 19세기 중반 동아시아 주재 영국외교관이 모색한 대조선문호개방정책을 밝히는데 목적이 있다. 크림전쟁이 발발하자, 영국 함대는 1854년 8월 말에 프랑스와 공동으로 캄차카 반도의 러시아 기지를 공격하였다. 그와 동시에 홍콩 총독 보어링은 외무부 장관 클레멘든에게 유럽 열강이 참여하는 대조선 문호개방 정책을 외무부에 제안하였다. 1865년 주청 영국공사 웨이드도 러시아가 조선과 육로 통상을 추진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유럽 열강과 공동으로 조선의 개방을 구상하였다. 영국외교관들이 조선의 문호개방을 구상하게 된 이유는 러시아의 독점적인 조선 진출을 차단함으로써 동아시아에서 상업적 이익을수호하기 위함이었다. 그들은 유럽 열강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조선의 문호개방을 구상함으로써, 조선을 열강의 이익이 균점되는 협력의 공간으로 만들고자 했다. 하지만 조선은 청의 속방으로 알려져 있었기에영국은 조선정부의 통치권 행사 여부를 확인했어야 했다. 영국외교관들은 청으로부터 조선이 속방이긴 하지만 내정과 외치를 자주적으로맡는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영국은 조선을 실질적인 독립국으로 고려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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