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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심장’에서 ‘시민의 광장’으로: 런던 트래펄가 광장From ‘Heart of Empire’ To ‘Square for Citizens’: Trafalgar Square in London

Other Titles
From ‘Heart of Empire’ To ‘Square for Citizens’: Trafalgar Square in London
Authors
염운옥
Issue Date
2017
Publisher
한국외국어대학교 영미연구소
Keywords
트래펄가 광장; 제국; 허레이쇼 넬슨; 차티즘; 네 번째 좌대; Trafalgar Square; empire; Horatio Nelson; Chartism; the Fourth Plinth
Citation
영미연구, v.39, pp.237 - 268
Indexed
KCI
Journal Title
영미연구
Volume
39
Start Page
237
End Page
268
URI
https://scholar.korea.ac.kr/handle/2021.sw.korea/85695
DOI
10.25093/jbas.2017.39.237
ISSN
2508-4135
Abstract
이 논문은 조성 당시부터 현재까지 이르는 트래펄가 광장의 역사를 ‘트래펄가=권력과 제국의 상징 공간’과 ‘광장=아래로부터의 정치 공간’이라는 이중성을 중심으로 분석했다. 런던 도심 웨스트민스터에 위치한 트래펄가 광장은 1810년대 존 내시의 런던 개조계획에서 유래한 광장으로 ‘아고라’와 ‘포룸’, ‘소통형 광장’과 ‘과시형 광장’의 중간 형태이다. 채링크로스 왕실 마구간이 1840년대 광장공간으로 조성되었고, 트래펄가 해전의 영웅 넬슨 기념비, 인도 식민지 건설에 기여한 장군 네이피어와 헤이블록 동상이 차례로 건립되면서 영제국의 상징이자 영국 정체성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동시에 광장은 차티즘과 노동운동, 반정부 시위 같은 아래로부터의 정치의 공간이기도 했다. 광장에는 아래로부터의 정치가 종종 출몰했다. 넬슨 기념비를 비롯해 제국의 상징물로 둘러싸인 곳에서 저항의 목소리가 울린다는 역설이야말로 트래펄가 광장의 본질이다. 19세기 중후반 트래펄가 광장은 1848년 차티스트들의 ‘트래펄가 혁명’과 1887년 경제 불황에 시달리던 실업자들의 시위를 정부가 폭력적으로 진압한 사건 ‘블러디 선데이’의 무대가 되었다. 21세기 트래펄가 광장은 대규모 리모델링 공사를 마치고 보행자 편의성을 높인 시민의 공간으로 변신했다. 네 번째 좌대의 공공미술로 전시된 아프리칸 디아스포라 미술가 잉카 쇼니바레의 작품 『병 속에 든 넬슨의 배』는 과거 제국적 정체성과 현재 다문화사회 영국과 이어주는 연결고리다. 트래펄가 광장은 오늘날에도 유동하는 의미를 생성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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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sociate Research Center > Research Institute of Korean Studies > 1. Journal Artic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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