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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학동 청동기시대 취락의 석기 분석Analysis of Stone Tools from the Gahak-dong Bronze Age Settlement Site

Other Titles
Analysis of Stone Tools from the Gahak-dong Bronze Age Settlement Site
Authors
손준호
Issue Date
2017
Publisher
중부고고학회
Keywords
Stone tool; Intercommunion; Subsistence; the Yeoksam-dong assemblage; the Gahak-dong site; the Korean Bronze Age; 석기; 교류; 생계; 역삼동식; 가학동유적; 청동기시대
Citation
고고학, v.16, no.1, pp.103 - 133
Indexed
KCI
Journal Title
고고학
Volume
16
Number
1
Start Page
103
End Page
133
URI
https://scholar.korea.ac.kr/handle/2021.sw.korea/85758
ISSN
1598-9852
Abstract
광명 가학동유적은 청동기시대의 대단위 취락으로, 61기의 주거지와 2기의 수혈에서 다수의 토기와 석기류가 출토되었다. 소위 ‘역삼동식’에 해당하는 유구・유물상을 나타내고 있는데, 총 241점의 출토 석기에 대한 분석 결과 청동기시대 전기 후반~후기 초에 해당하는 형식들이 다수 확인되었다. 퇴화된 혈구와 간략한 홈 형태의 단 연결부를 갖춘 이단병검, 장신형의 삼각만입촉은 전기의 늦은 단계에 해당하며, 심부유단식의 일단병검은 후기의 이른 단계를 나타낸다. 전기에서 후기로의 과도기적 단계를 보여주는 자료로는 이단경촉과 세장유경촉의 공반 관계, 주형에서 역제형 또는 편주형으로 변화하는 중간 과정의 석도 등이 있다. 또, 횡단면 원형계의 합인석부가 다수를 차지하는 것이나 환상석부, 주상편인석부의 등장도 전기 후반부터 나타나는 현상들이다. 한편, 유단석부와 비교적 긴 경부 양측에 홈이 있는 유경석검의 존재는 동일한 소속 시기와 함께 팽이형토기 문화와의 관련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 시기를 벗어나는 유물의 양상이 거의 확인되지 않고 유구 간의 중복 축조도 많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취락의 존속 기간은 길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이미 조사된 매장 영역까지 포함하여 상당한 규모의 대단위 취락을 형성하였으며, 주변 지역과의 다양한 교류 활동을 지속하면서 중심 취락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였을 것이라 생각된다. 교류 활동의 근거로는 팽이형토기 문화와의 관계 이외에 자색 셰일제 석촉과 활석제 방추차의 외부 유입 가능성을 지적할 수 있다. 취락 내 석기 제작이 활발하지 않았다는 점 또한 취락 간 교류의 가능성을 짐작케 하는 현상 중 하나인데, 주변 유적과의 비교 결과 능곡동으로부터의 석기 공급이 상정된다. 한편, 가학동유적을 중심으로 반경 10km 이내에는 소수의 대형 취락이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자리하는 가운데, 그 주변으로 기능을 달리하는 소형 취락들이 다수 분포하는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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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duate School > Department of Archaeology and Art History > 1. Journal Artic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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