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영남 유학자들의 벽이단론(闢異端論) - 온건한 포용주의에 대한 재평가 -

Abstract

조선 후기 영남지역의 벽이단론은 대체로 배타적 근본주의로 설명되어 왔으나, 실제로는 온건한 포용주의의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선보였다. 영남지역 유학자들은 ‘추로지향’이라는 문화적 자긍심을 바탕으로 자기반성과 근본배양에 힘쓰는 ‘내향적 근본주의’를 지향했으며, 척사론(斥邪論)의 배타적 갈등 이전에 위정론(衛正論)의 자율적 교화를 강조하였다. 그러나 19세기 전반 천주교 교옥(敎獄)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천주교는 교화의 대상인 ‘이단’이 아니라 형정의 대상인 ‘사마외도’로 평가절하되었고, 그에 따라 방어적이며 배타적인 ‘향외적 근본주의’로 선회하는 양상이 나타났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으로 인해 영남 유학자들의 벽이단론은 포용주의적 위정론, 배타주의적 척사론, 현실주의적 척양론이라는 세가지 양상을 선보였다. 17세기 이주의 근본회복론적 포용주의의 관점에서 이단은 박멸의 대상이 아니라 치유의 대상으로 설정되었는데, 정조와 채제공의 탄력적인 천주교정책과 상통하는 이 관점은 19세기에도 이주정과 정상관 등을 통해 일정하게 계승되고 발전되었다. 이에 비해 신유교옥을 비롯한 교옥이 발생하는 19세기 전반에 조술도를 비롯한 영남 유학자들은 천주교를 이단이 아닌 사마외도로 규정하면서 철저한 배타주의적 척사론을 전개했다. 마지막으로 병인양요가 발발한 19세기 후반부터 정오석과 금서술을 비롯한 유학자들은 서양 제국주의 침탈의 역사적 맥락에 따라 경제, 과학, 농업, 기술, 의약 등의 현실적 문제에서 인간의 사적 욕망과 현실적 이익을 자극하는 서학(西學)을 비판적으로 인식하는 척양론의 현실주의적 전회를 이루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