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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열’이라는 포르노그래피-<춘몽>에서 <애마부인>까지 ‘외설’ 검열과 재현의 역학A Study on “Censorship” in Context of Pornography- Interactions between Censorship and Representation of “Obscenity” from Spring Dreams to Lady Ae—Ma—

Other Titles
A Study on “Censorship” in Context of Pornography- Interactions between Censorship and Representation of “Obscenity” from Spring Dreams to Lady Ae—Ma—
Authors
박유희
Issue Date
2015
Publisher
대중서사학회
Keywords
검열; 포로노그래피; 재현; 외설; 관음증; 페티시즘; 도착; 섹스영화; 호스티스영화; 에로(티시즘)영화; pornography; censorship; obscenity; representation; voyeurism; perversion; fetishism; sex movie; Hostess movie; Eroticism movie
Citation
대중서사연구, v.21, no.3, pp.95 - 145
Indexed
KCI
Journal Title
대중서사연구
Volume
21
Number
3
Start Page
95
End Page
145
URI
https://scholar.korea.ac.kr/handle/2021.sw.korea/95267
DOI
10.18856/jpn.2015.21.3.003
ISSN
1738-3188
Abstract
본고는 1960년대 후반~1980년대 초반 ‘외설’을 둘러싼 검열과 영화 재현의 관계에 대한 물음에서 출발한다. 외설 혹은 음란의 문제는 ‘풍속’이라는 이름으로 식민지시기부터 검열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식민지 시기는 물론이고 해방 이후 1960년대 전반기까지만 해도 이 문제는 크게 이슈화되지 않았다. 그런데 1960년대 말부터 영화의 섹슈얼리티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대두하고, 1970~80년대에는 ‘호스티스영화’, 혹은 ‘에로(티시즘)영화’라는 장르까지 형성된다. 그리고 그러한 영화들은 성적 노출과 재현의 수위 때문에 언제나 ‘외설과 음란’ 논란에 휘말리곤 한다. 여기에는 1960년대 후반 유럽과 미국에 불어 닥친 ‘프리섹스’ 열풍, 서구 지향적 근대화에 따른 풍속의 변화와 섹스 담론의 활성화, 그리고 텔레비전 매체의 확산으로 인한 영화의 돌파구 마련의 필요성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영화사에서는 주지하다시피 한국의 특수한 상황 때문에 검열이 유난히 강력하게 작용했다. 더구나 1960년대 후반~1980년대 초반은 문화적 검열뿐 아니라 사회적 통제까지도 최고조에 달했던 시기였다. 따라서 재현 문제에 있어서도 그것에 대한 검열의 영향 내지 역학을 고찰하는 것은 이 시기 한국영화사 연구에서 필수적인 관점 중 하나이다. 이는 섹스 재현 문제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해명을 위해 본고에서 주목한 것은 검열문서라는 텍스트와 영화의 재현 사이의 유비적 역학이다. 검열문서는 그 자체가 통제를 명분으로 금기시되는 영역을 짚어내어 표출하고 있으며, 그 장면에 대한 관음증적 상상을 전제로 한다. 다시 말해 신체의 노출이나 정사 장면에 대한 삭제를 요구할 때 표면상으로 그것은 관료적 기계성으로 수행되는 것 같으나, 그 바탕에는 영화 전체의 의미구조와 관계없이 그 장면만을 ‘음란과 외설’의 맥락으로 재구성하는 상상력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특정한 신체 부위나 일정한 장면을 과대평가하여 집착하는 페티시즘이자, 그것만을 들여다보는 관음증적 양상으로 포르노그래피의 작동방식과 동궤를 이룬다. 이러한 작동방식은 검열주체와 검열을 신청하는 영화생산자와의 대화 과정에서 수행된다. 따라서 검열주체의 관점과 검열문서의 논리는 영화 텍스트에 강제되고, 영화는 그것을 의식하고 반영하며 대응하게 된다. 그러나 검열당국과 영화 제작 측에서 표면적으로 내세우는 것은 언제나 ‘윤리’와 ‘예술’이었기 때문에 그러한 명분 또한 영화 재현과 검열의 상호작용에 관여하게 된다. 이 세 가지 인자는 검열과 섹슈얼리티 재현의 역학을 구성하며, 엄혹한 통제와 포르노그래피적 상상력의 공존이라는 매커니즘을 만들어냈다. 이러한 상상력이 재현의 형태로 집약적으로 표출된 것이 1980년대 초 <애마부인>이었다. <애마부인>은 ‘정숙한 창녀’ 표상을 통해 표면적으로는 보수적 주제를 내세우면서도 영상에서는 관음증과 페티시즘으로 점철된 도착적 양상을 드러낸다. 이러한 재현은 ‘—부인 시리즈’의 전범이 되며, 이후 오랫동안 한국 섹스영화의 관습으로 작용하게 된다. 요컨대 1980년대 이후 ‘에로영화’로 불린 한국 섹스영화의 관습은 1960년대 후반 섹스 영화와 담론의 대두에 대한 정치권력의 역행적 억압에서 비롯된 도착과 분열의 양상이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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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lege of Culture and Sports > Creative Writing and Media Studies in Division of Culture Creativity > 1. Journal Artic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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