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승병의 성격과 역할The Character and Role of Buddhist Monk Soldiers in Koryeo
- Other Titles
- The Character and Role of Buddhist Monk Soldiers in Koryeo
- Authors
- 김창현
- Issue Date
- 2015
- Publisher
- 동국대학교 동국역사문화연구소
- Keywords
- Monk group(승도); Monk Soldiers(승병); Suwonseungdo(수원승도); jaegahwasang (재가화상); Buddhist temple(불교사원); 승도; 승병; 수원승도; 재가화상; 불교사원
- Citation
- 동국사학, no.59, pp.75 - 116
- Indexed
- KCI
- Journal Title
- 동국사학
- Number
- 59
- Start Page
- 75
- End Page
- 116
- URI
- https://scholar.korea.ac.kr/handle/2021.sw.korea/95426
- ISSN
- 1225-0376
- Abstract
- 본고는 고려시대 승군(승병)에 대해 조명했다. 隨院僧徒 부류는 사원에 노동력을 제공하면서 사원을 수호하는 존재였고 국가에 노동력을 제공하면서 군인으로 차출되는 존재였다. 그들은 국가를 위해 동원될 때 자신의 물품과 식량을 휴대했으므로 국가의 재정 부담을 줄일 수 있었다. 수원승도의 발생은 사원의 院, 특히 교통 요충지의 院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승 의장이 동원한 승도 300여명이 척준경의 병력보다 중요한 역할을 하지는 못했다. 개경과 서경의 전쟁에서, 수원승도로 추정되는 묘청은 승도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 몰락했다. 개경군은 水戰의 패배를 승병의 활약으로 역전시켰고, 土山 축조 과정의 전투에서 승도가 공을 많이 세웠다. 이고는 승도와 결탁해 大事를 도모했다. 이의방은 개경 사원의 승도와 전쟁을 벌였고 정균의 사주를 받은 승도에게 암살당했다. 최충헌은 승도의 도움을 받기도 했지만 승도에게 암살당한 뻔 했고, 종군 승도의 봉기로 위험에 빠졌다. 무인정권이 명학소와 전주의 봉기를 진압하기 위해 승도를 동원했다. 충주 관노의 난은 승도의 협력 하에 일어났고, 조위총과 餘衆은 승도를 병력으로 사용했고, 皂隸 이통은 봉기해 승도를 불러 모았다.
승도는 거란과의 전쟁에서 공로를 세웠고, 여진과의 전쟁에서 별무반에 항마군으로 편성되어 활약했다. 몽고와의 전쟁에서 처인성이 승 김윤후의 활약에 힘입어 撒禮塔을 사살했고, 상주산성이 승 洪之의 활약에 힘입어 車羅大의 주력을 격파했는데, 각각 승도가 참전했을 가능성이 컸다. 고려말에 승도가 홍건적과의 전쟁에 참여했고, 왜구와의 전쟁에 수시로 차출되어 전함을 제조하거나 전투에 나섰고, 요동정벌군에도 차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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