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tailed Information

Cited 0 time in webofscience Cited 0 time in scopus
Metadata Downloads

새 자료를 통해서 본 연희자로서의 수척과 반인Illuminating Sucheok and Banin as performers through new materials

Other Titles
Illuminating Sucheok and Banin as performers through new materials
Authors
전경욱
Issue Date
2014
Publisher
한국민속학회
Keywords
Yangsucheok; Sucheok; Jaeinchon; GuBaekJeongBuRak; Banin; 양수척; 수척; 재인촌; 구백정부락; 반인
Citation
한국민속학, v.60, pp.143 - 184
Indexed
KCI
Journal Title
한국민속학
Volume
60
Start Page
143
End Page
184
URI
https://scholar.korea.ac.kr/handle/2021.sw.korea/99894
ISSN
1229-6953
Abstract
고려시대에는 북방 민족인 양수척이 있었는데, 도살·수렵·유기장·잡희 등으로 생계를 유지했으며, 기생도 이들 가운데서 나왔다. 조선시대에도 이들의 후예들이 계속 도살·수렵·유기장·잡희를 담당했다. 그래서 남한 지역의 재인들은 주로 세습무계 출신이었지만, 세습무가 없는 황해도와 평안도에서는 북방 민족인 양수척의 후예들이 재인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박은용의 논문과 『朝鮮の聚落』 中篇 구백정부락 조를 통해, 재인촌은 바로 양수척의 후예임이 드러난다. 서울에 거주하면서 본산대놀이를 하던 연희자들은 성균관의 노비인 반인이다. 이들은 서울 관청의 관노였기 때문에 서울에 거주할 수 있었다. 여러 기록들, 특히 『승정원일기』 숙종 8년(1682) 민정중(閔鼎重)의 상소는 “나라의 풍속은 (반인들이) 소 도살과 악(樂, 공연예술)으로서 삶을 영위하고 있으니”라고 하며, 반인을 전문적 연희자로 밝히고 있다. 이 기록은 『예종실록』 1년(1469) 양성지의 상소문 가운데 조선의 재인과 백정은 고려시대 양수척의 후예로서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하는 풍습과 짐승을 도살하는 일”에 종사하고 있다는 내용과 그대로 부합된다. 그래서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된 반인들 가운데 재인과 백정, 즉 수척도 있었다는 사실을 전해 주면서, 반인이 서울 본산대놀이의 연희자로 활동할 수 있었던 배경을 밝혀 준다.
Files in This Item
There are no files associated with this item.
Appears in
Collections
College of Education > Department of Korean Language Education > 1. Journal Articles

qrcode

Items in ScholarWorks are protected by copyright, with all rights reserved, unless otherwise indicated.

Related Researcher

Researcher Jeon, Kyung Wook photo

Jeon, Kyung Wook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Read more

Altmetrics

Total Views & Downloads

BROW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