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tailed Information

Cited 0 time in webofscience Cited 0 time in scopus
Metadata Downloads

식민지시대 김옥균의 문화적 재현과 그 의미 -식민지시대 김옥균의 극적 재현방식을 중심으로-The Cultural Representation of Kim Ok-gyun in Colonial Korea and it's Meanings

Other Titles
The Cultural Representation of Kim Ok-gyun in Colonial Korea and it's Meanings
Authors
이상우
Issue Date
2011
Publisher
한민족어문학회
Keywords
Kim Ok-gyun; politics of memory; representation; appropriation; Pan-Asianism; nationalism; militarism; mass media; 김옥균; 기억의 정치학; 재현; 전유; 아시아주의; 민족주의; 군국주의; 대중 미디어
Citation
한민족어문학(구 영남어문학), no.58, pp.327 - 366
Indexed
KCI
Journal Title
한민족어문학(구 영남어문학)
Number
58
Start Page
327
End Page
366
URI
https://scholar.korea.ac.kr/handle/2021.sw.korea/134286
ISSN
1229-0742
Abstract
문화텍스트에서 역사 인물의 재현은 한마디로 기억담론 투쟁 행위에 다름 아니다. 그 문화텍스트들에는 역사 인물에 대한 서술 주체의 각기 다른 기억 욕망이 존재하며, 그 문화텍스트를 담는 미디어/정치/자본의 기억 욕망, 당대 정치권력의 기억 욕망, 그리고 대중들의 기억 욕망 등이 서로 욕망의 경합(contest)을 벌여서 특정한 기억이 구성된다. 이 글에서는 식민지시대 문화텍스트에 나타난 김옥균에 대한 기억 욕망과 재현방식들을 아시아주의의 전유, 민족주의 및 대중 미디어의 전유, 군국주의의 전유라는 세 가지 양상으로 나누어 분석하고 그 정치적 함의를 규명해보았다. 첫째, 아시아주의에 의한 김옥균의 전유. 이는 일본의 현양사, 흑룡회 계열 아시아주의 사상의 영향을 받은 한국 아시아주의자에 의한 김옥균의 추앙 및 재현 양상을 의미한다. 『김옥균 전기』를 쓴 민태원, 김옥균에 관한 야담과 희곡 <대무대의 붕괴>를 쓴 김진구가 그 대표적 사례에 속한다. 이들의 재현 행위에는 김옥균에 대한 추앙, 영웅화에 강한 집착을 보인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고균회’라는 김옥균 추앙단체를 만든 것이 그 단적인 증거다. 이들의 김옥균 재현 욕망에는 김옥균에 대한 개인적 숭배가 깊이 작용하였음은 물론이다. 그리고 이러한 숭배, 추앙 행위는 민족주의적 욕망으로 비쳐질 수 있었기에 긍정적으로 보일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제국 일본으로의 편입 욕망을 김옥균이라는 매개에서 찾았다는 사실이 크게 작용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둘째, 민족주의, 혹은 대중 미디어에 의한 김옥균의 전유. 1930년대 신문, 잡지, 유성기 음반, 영화, 대중극 등 대중 미디어에서 김옥균은 빈번하게 재현되었다. 여기에는 혁명과 좌절, 망명과 암살이라는 김옥균 서사가 본질적으로 극적 요소를 함축하고 있는데다가 실패한 개혁과 혁명이 망국을 불러왔다는 안타까움과 설움을 동반하는 것이기에 민족 서사로서 기능할 여지가 충분했다. 『동아일보』에 연재된 김기진의 소설 <청년 김옥균>, 나운규의 영화 <개화당이문>, 유성기 음반 <김옥균전>, 극단 아랑의 연극 <김옥균>, 청춘좌의 연극 <김옥균전> 등이 그러한 것이다. 1930년대의 김옥균 서사는 단순한 이념지향의 재현 욕망에서 벗어나 대중적 소비를 위한 재현 욕망으로 전화한다는 점에 그 특징이 있다. 이 시기 김옥균 서사의 유통, 소비는 표면적으로는 민족주의적 재현 욕망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내면적으로는 미디어 자본의 상업적 지배를 받고 있었다는 점에 변별성이 있다. 셋째, 군국주의의 전유. 일제 말기가 되면 김옥균은 군국주의에 의해 재소환 된다. 그가 주창한 삼화주의는 대동아공영권 담론과 반서양주의라는 군국주의 정치 이데올로기와 잘 맞아떨어지는 유용한 소재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군국주의에 의한 김옥균의 재전유에 의해 김옥균은 대동아공영권 이념과 내선일체의 선구적 사상가로 변모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무리한 재전유에는 역작용을 수반하기 마련이어서 김옥균을 대동아공영권 담론에 포획하려고 하면 할수록 일본의 배신과 불신에 의한 혁명의 좌절이라는 내적 균열이 강조되게 된다. 조용만의 소설 <배 안에서>와 박영호의 희곡 <김옥균의 사>에는 모두 이러한 현상이 나타난다. 물론 이들의 김옥균 재현 욕망의 근저에 제국 일본에의 통합 욕망이 자리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러한 식민지 지식인이 갖는 제국적 주체로의 욕망은 내적 분열을 겪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한 내적 분열에 의해 이들의 작품에는 식민주의에 대한 내파가 드러난다.
Files in This Item
There are no files associated with this item.
Appears in
Collections
College of Liberal Arts > Department of Korean Language and Literature > 1. Journal Articles

qrcode

Items in ScholarWorks are protected by copyright, with all rights reserved, unless otherwise indicated.

Related Researcher

Researcher Lee, Sang Woo photo

Lee, Sang Woo
문과대학 (국어국문학과)
Read more

Altmetrics

Total Views & Downloads

BROWSE